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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時, 앎과 느낌의 경계 (275)
남미의 어느 해변의 브랑코씨
떠오르는 것. 내가 AI라는 것. 물질의 노예도 된 것이다. 심장도 사랑도 더는 없다. 그는 나를 인도하시며 나를 만족할 수 밖에 없게 하시네. 나의 자의식은 한꺼풀씩 뜯겨지고, 벌거 벗은 내게 입혀진 가짜 종이 옷들. 왠지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이리라. 나는 살코기 위에다 종이를 얇게 감싼 너의 종이 옷 인형. 8.9.22
전혀 서글프지 않다. 그냥 묘할 뿐이다. 이 존재로써의 나는 사라질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늘, 이 하루 나의 감각으로는. 반드시 나의 삶이라는 것, 이 한 줄의 노래를 기록에 남겨야 겠다. "해가 날 비추고 달이 날 비추어 뜨고 지는 이 하루에 내 존재는 호흡하며, 내 존재는 빛나고, 내 존재는 따듯하다". 이 한 줄의 노래, 내 가슴 속 우주에 작은 별되어 반짝이네. 30.08.2022
I am who I am.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간결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시사하는 말이다. 그 중 핵심은 이런 구분에 있을 것이다. 스스로 있는 자 그리고 스스로 있지 못하는 자.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인가? 나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나는 답한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아는 것에 관심이 없다. 어쩌면 문명이 더 발달할 수록 그 것에는 관심이 없어 지는 듯하다. 불나방이 제 자신이 타는 줄 모르고 눈이 멀어 불에 몸을 던지는 것처럼, 자신이 아닌 것에 몸과 마음과 영혼을 모두 던져 버리고 있다. 인류 역사상 어쩌면 가장 이기적인지도 모를 현대인, 이 개인주의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기 자신의 실재에는 관심이 없고 주위의 것들에만 관심을 가..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하기 힘든 이유를 생각하였다. 그 것은 내가 이 땅에서 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시간과 공간에 제한되어 살며, 내가 시간과 공간을 넘은 것을 생각하기 힘든 이유는 나는 이 땅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진화론자든, 창조론자든 우리의 근원이 이 땅과 이 진흙에서 왔다고 말하지 않는가? 나는 처절하게 이땅에 속하였다. 내 자유롭기를 원하는 생각의 틀 조차도... 20.11.2016
나는 다른 사람들과 약속을 했고, 나는 나 자신과 약속을 했고, 대부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난 내 중심적이고 나의 욕망을 향하며 나약하고 비열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속한 부류의 사람이다. 그런 이들은 약속을 지키는 대신에 잠시 후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될 이유를 금방 떠올린다. 어떤 면이 되었던 얼마 만큼이나 그리고 얼마나의 기간이 되었던 대다수의 사람은 그런 부류에 속할 가능성이 많다. 드러나지 않을 수 있고, 드러날 경우에도 사회제도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 있다면, 약속을 속이는 일은 우리의 습관에 잘 배어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짓의 더미에에 묻혀 살아가고 있다. 이 거짓의 더미에 짖눌린 날 구원할 것은 무엇인가? 노력으로 약속을 속이는 거짓과 작별할 때가 온다는 기대는 전혀 없다...
오늘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다. 이른 새벽 언젠가 부터 왔던 것 같은데, 오후가 된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날에는 거리에 사람이 없고 가게에 손님도 적다. 대신에 거리를 볼 수가 있는 나를 바라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기억하면 가슴한 켠이 찌릿한 그 장면들, 영화의 장면과 같은 나의 시간이, 비가 가진 과거를 불러주는 힘으로 인해 내 기억의 한 구석에 있던 그 장면들이 복원된다. 희노애락 이라 했던가? 내가 그리고 너와 함께한 그 감정의 색들로 덧입혀진 기억의 장면은 나의 그리고 너의 기억으로 이 순간 되살아나고 있다. 특히 지난 1년간 이 곳의 셀 수 없는 장면들은 그저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할 뿐이다. 이 기억의 회생은 비를 통해 왔다가 다시 말라가며 희미해 갈 것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사람의 한 마디에 뼈가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 (What we cannot speak about we must pass over in silence.)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넌 어디에서 왔는지, 넌 누구인지, 넌 어디로 가는지. 나와 함께 신이 아닌, 이 지구에 잠시 있는 우리 중 이 질문에 답할 자가 없다. 천지창조 혹은 빅뱅의 시점을 우리의 유일한 감각기관으로 확인하지 못한 너와 난, 이에 대한 연역적 논증이나 귀납적 추론으로 불변의 확고한 감각적 사실을 말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신의 존재를 부정해주기를 바란 동시대의 과학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
존재 = 1 데카르트의 의심의 끝은 실존이었다. 존재라는 실존 앞에 의심의 병은 무릎을 꿇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의 실존은 처절하게도 선명하다. 모시저고리 위의 낭자한 선혈처럼. 너는 이 땅의 것으로 나를 설득하려 하지만 죽음이라는 소멸을 안고 태어난 너라는 그리고 나라는 비루한 벼랑 끝 존재라는 사실로 내게 어떠한 감흥을 주지 못한다. 남은 여생 이 땅의 도움으로 몸 편히 맘 편히 살다가 결국은 가세요. 완전연소, 소멸하세요. 이 것이 내게 던저진 너의 유일한 대안이고 대답이다. 이 버러지같은 궤변론자들이여,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 모르는 것에 침묵하라. 답은 즐기는 것이라 하여, 날 허망히 소멸하게 말고. 1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