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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어느 해변의 브랑코씨
박식하고 친절한 윌리엄씨가 삼일 간 불고기덮밥만 먹으러 식당으로 오고 있다. 맨하튼과 브루클린에서 살아온 극좌파 성향의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은 게이이자 노인 직전의 아저씨다. 이야기를 잘 따라가다가도 끝머리에 가면 무슨 말인지 헤매는 경우가 종종 생겼는데, 내 영어실력의 문제가 조금 있기도 했겠으나, 그가 설명하는 내용이 나를 자신의 본거지를 잘 아는 자기 동네 뉴욕커라고 생각하고 그의 입빨의 따발총을 쏘아댓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의 말을 100프로 소화할 만한 소화액, 즉 그 동네 뉴욕커의 백그라운드가 없었다. 윌리엄씨는 그의 부모님께서 스웨덴과 덴마크 이민자이셨는데, 이민자인 그들에게 한때 유명했던 프린세사 케익이라는 것의 겉은 투박하나 실재로는 찬란하고 완벽하게 조화된 케익을 내가 알았으면 좋겠..
어려운 때가 오니 모두의 진면목 세상의 진면목이 보인다. 내게 영감을 주던 유명인이나 지식인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눈길을 사로잡던 논리적인 말과 멋진 말투 그리고 오차없는 비주얼들, 지금 내게는 도움 안되는 쓸모없는 것. 그들도 갇힌 자들일 뿐이다. 마돈나의 갇힌 화려한 일상의 공개는 내 기분을 전환시키기 커녕 낙담시킨다. 소위 소셜인풀루언서들의 인스타 계정을 다 삭제하고 있다. 그들의 진면목을 본 후에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은 그들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옆에 있는 화려하지 않은 사람들. 어려운 시기에 날 기억하는 손님들의 주문. 이 들이 이런 것이 내 삶과 함께 해야할 동반자임을 알게 되었다. 이 것이 코로나로 알게된 삶의 하나의 진면목이다. 27.03.2020
내일이면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이 도시가 완전히 마비되고 사람들이 공포와 염려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악몽 속에서 살아가게된 일주일 말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던 브라질에 공포의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불과 채 10일이 되지 않는다. 초기의 한국처럼 30 명도 되지 않던 확진자 수가 지금은 2000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도시 포르탈레자는 오늘 160명이 넘었고, 인구비례를 볼때 브라질 전역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있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간 수많은 유럽과 브라질 전역의 관광객들이 본인도 모르게 뿌리고 간 악의 씨앗이 우리의 몸에 들어와 기생하고 이제는 수많은 악의 꽃을 피우는 중이다. 활기찬 사람들이 아침이면 Beiramar를 걷고 뛰며, 이 곳의 구름 한 점없이 우울함 한점없이..
가까이 다가갈 수록 마음이 두려워지고 몸도 무거워 짐을 느낀다. 쾌쾌하고 습한 냄새가 내 콧가에 번지고 있었다. 그 장소가 사방으로 막혀 있었는데 경찰이 구조를 위해 통제한 탓이다. 그 주위에 살고있는 사람인 척하며 가까이에 접근해 보았다. 구조대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나름대로의 룰에 따라 쉬거나 움직이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때와는 다르게 가까이 가서 그 폐허를 보니 가슴이 그 건물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아파트 내벽의 잔해들이 잘게 부서져 2층 높이 만큼 겹겹히 쌓여있다. 저 아래 어딘가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7인의 생사가 함께 묻혀있다고 생각하니, 감히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뒤돌아 나오는 길에 터벅터벅 골목들을 어질어질 빠져나오며 드는 생각이, 인간으로써 이 땅에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가게를 전세 내다 시피한 북유럽 비치발리볼 선수들도 떠나고, 프리카니발 주간에 접어들어서 주중에는 손님이 많이 줄어 식당이 한산하다. 한 달 반정도 바쁘게 돌아가다 좀 여유가 있으니, 동네 뒷산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다 산 중턱에서 시원한 약수물을 마시며 한 숨 돌리는 기분이다. 가끔오던 쿠바 의사가 한 소녀를 데리고 왔다. 왠지 전에 말하던 케이팝을 좋아하는 딸이 아닐까 했는데, 반갑게 인사하며 내가 말하던 바로 그 딸이며 아미(Army)라고 소개했다. 소녀는 아버지처럼 까무잡잡했는데, 두 사람 다 전형적인 뮬라토 쿠바인이었다. 아버지가 한국 식당에 와보는 게 하나의 버킷 리스트였다고 하니 베시시 웃는데, 수줍게 웃는 입가에서 카리브풍 트로피카나의 감성이 묻어 나왔다. 포르투갈어를 잘 못하는 걸로 봐서 ..
작년에 맘이 짠했다. 올해도 다시 그런 시간이 왔다. 어제 한 달간 정들었던 학생들에게 그리울 거라고 하니, 자기들도 우리와 케이밥을 좋아하며, 그릴울 거라고 했다. 한 달 남짓 흘렀나. 찾아오는 그 날이 그립고, 떠나는 그 날도 그립고. 만남은 그리움 투성이라. 내 눈으로 마지막 케이밥에서의 그들의 점점 흐려질 모습을 선명하게 찍고 있었다. 내 심상의 앨범에 남길 사진들을. 아마도... 너희도 나를 좋아했었을까? 07.04.2019
이 사람이 온 건 점심 시간은 끝나고 오후가 지루해지기 시작할 때 였던 것이다. 말쑥한 차림이지만, 큼지막한 케리어를 가지고 들어온 것으로 봐서 출장을 왔구나 명백했다.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니, 한국인인데, 싱가포르에서 살고 있고, 독일계 선주회사를 다니고 있으며, 선원들 문제로 파견되어 급하게 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일과 생활 이야기를 하다 이 남자는 야시장 구경하러 나갔다. 해가 저물고 이 남자가 다시 돌아왔다. 마치 다른 날에 다시 우리 식당을 온 것처럼. 짧은 시간이었지만, 살아온 배경과 아주 젊은 시절의 도전이야기 그 후 지금 우리가 보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 남자와 함께한 몇 시간이 몇 일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몇 일을 함께 지낸 그 남자와 나는 시..
오늘 가게에 온 안드레. 4년 전에 왔었다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본 듯하기도 한데, 어디에서 머물고 있냐니 우리 아파트의 바로 윗집이다. 겉모습을 봐서는 평범한 것 까지는 아니지만 특이점이 별로 없는 중간 키의 백인이다. 나이는 40 정도 되어 보이는데 가만 보면 머리는 스킨헤드로 약간의 엣지를 주었지만, 얼굴은 천상 순해 보이는 스타일이다. (내가 인터넷이 느려져 고쳐 주려고 손보다 아애 끊어지자 약간 짜증섞인 말투로 니땜에 아애 안된다라고 말한 그 때를 빼놓고는 순한맛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이 윗집 남자가 하는 일이 좀 특이하다. 포르탈레자에 한 달을 있으며 일도 한다는데, 인터넷으로 계속 일을 한다 했다. 여기 오기 전에는 콜롬비아에 있었고, 올해에 갈 곳도 이미 여러 군데가 정해져 있는데,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