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남미의 어느 해변의 브랑코씨

걷고 걷던, 걸음의 추억 본문

브라질 해변의 K-식당

걷고 걷던, 걸음의 추억

Tigre Branco 2021. 9. 10. 00:14

뭔가에 홀린 듯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냥 이 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내가 볼 수 없는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마음이 움직였다. 내 아내의 마음도 날 따라 움직였다. 우리는 이내 청록의 해변들이 여기저기, 어느 왕관의 사파이어처럼 박혀있는 도시, 포르탈레자에 작은 둥지를 트기로 했고, 둥지에 오래 머물려 할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난 초대받은 자로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 갔지만, 이제는 초대하는 자가 되기로 했다. 아직 이 곳에는 없는 한국식당을 열어 한국음식과 삶의 단편을 이야기함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장소를 열고자 했다. 사랑하는 혜림이는 2살이 채 되지가 않았다. 나와 아내는 혜림이를 안고 식당할 곳을 찾아 이리 저리로 걷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하루를 걷고, 한 주를 걷고, 한 달을 걸었다. 걸으면 걸을 수록 이 곳의 기운이, 오랜 이야기들을 담은 땅의 힘이 나의 발을 통해 온 몸으로 전달 되는 듯하였다. 그리고 바람. 늘 부는 바람이 우리 걸음의 활력소가 되었다. 이 곳은 원래 바람의 땅이다. 태풍같이 파괴하는 힘이 아니라, 열대의 뜨거움을 식혀주는 트로피칼의 청량한 바람이다. 그 청량함은 청록의 푸름을 머금었다. 우리 마음을 채색한 그 푸름.

 

6년이 지났다. 내 고향의 이름난 해운대를 닮은 베이라마 해변 곁에 식당을 열었고,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만남 그리고 새로운 생각들이 케이밥이라는 이름의 이 곳 구석구석에 채워졌다. 이 결정에 대해 누군가 생각없고 무모한 것이 아닌가 한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짧은 삶의 시간 동안, 자신에 의한 자신있는 선택만큼 잘 한 선택은 없다고 믿는다. 자신의 바람과 생각이 있는 곳에만 오롯한 자신이 있는 것이며, 내 자신이 있지 않는 그 어떤 것도 나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남의 생각과 판단과 이야기는 그 아무리 대중의 눈 앞에 펼쳐진 멋진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가까이 가면 그 실체가 없는 저 사하라 사막의 신기루와 같을 것이다.

 

나는 나의 오아시스에 닿았다. 

 

 

 

반응형

'브라질 해변의 K-식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즈 오브 잭  (0) 2021.10.31
길고양이들  (0) 2021.10.31
참혹함이 내 발아래에 있음이 믿어지지 않던 날.  (0) 2021.10.31
키작은 노인의 말  (0) 2021.10.27
걷다가  (0) 2021.10.2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