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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어느 해변의 브랑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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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해변의 K-식당

카다피와의 추억

Tigre Branco 2022. 2. 7. 19:39

리비아를 떠난지도 10년. BBC뉴스를 통해 간간히 들려오는 그 소식에 따르면, 리비아는 아직도 그 이전의 평화로움을 되찾지 못하고, 리비아 사람들은 여전히 카오스의 세상에서 불안과 불확실의 삶을 이어간다. 이제는 비현실적인 현실로 채색되어버린 어렴풋한 그 때의 기억이 저 먼 발치에서 아지랑이 처럼 피어오를 때가 있다. 그리고 오늘 내가 만났던 카다피가 떠올랐다. 

 

모래가 작은 소용돌이를 타고 이내 우리 위로 흩뿌려지기를 반복했다. 이 밤의 음산함은 허공에 내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격하게 부딛혀 가며 만들어 냈고, 내몸과 신경은 긴장감으로 극도로 팽창했다.

 

사막 위 보이지 않는 길 그의 눈은 어떻게 그 길을 향해 갔던가? 도시의 정리되 길과 꺼지지 않는 빛 그 불야성에 자라고 익숙한 내가 이 사막의 남자가 달과 별의 조명 만으로 사막 한 가운데 있는 그의 비밀의 장소를 찾아가는 능력을 시종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 보고 있었던 것은 명확한 논리의 귀결이다. 

 

그의 BMW가 멈춘 곳은 역시 사막 한 가운데, 그는 내게 내리라고 말한다. 아직 내 몸에 긴장이 사그라지지 않은 때이다. 그 소리에 순간 긴장되어 작고 가는 목소리가 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여기인가?" "그래, 저기" 그가 짧게 답했다. 내가 본 것은 제법 큰 원형의 몽골식 게르와 흡사한 텐트였다. 딱 보아도 10명은 족히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어 보였다. 

 

이 내부에는 태양열인지 가솔린인지 모르겠지만 자가 발전기를 통해 전기가 공급되고 있었다. 내부의 장식은 지역의 전통 문양들과 장식들로 가득했으며 바닥에는 모로코식 카펫이 빈틈없이 깔려 있었다. 한 쪽으로 가던 그가 자기 신주단지를 모시듯 잘 보관된 작은 술창고를 보여 주었다. 다양한 술들로 가득했고, 주로 보드카와 위스키가 주를 이루었다. 이 지역의 대부분의 음주가들은 도수가 높은 술을 즐긴다. 그는 앱솔루트와 레드불을 꺼내 우리 앞에 놓았다. 현지산 피스타치오와 마른 과일 안주도 함께 꺼내 놓았다. 안주가 빈약한 것을 약간 의식했던지, 이 곳은 먹으로 오는 곳이 아니라 마시로만 오는 곳이니 이해하라고 했다. 

 

몇 모금이 내 목으로 타듯이 훑고 지나가자 몸에 남았던 긴장감이 겨울에서 갓 해방된 이른 봄날의 개울가가 녹듯 녹아 내렸다. 그는 내게 제안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마음에 들고 나와 같이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방금 이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을 보아, 외국인에게 자신의 비밀 아지트를 보여주고 함께 술을 마시는 이 곳을 금단의 담을 넘는 일을 같이 하다보니 내게 친밀감을 느끼게 된 듯 싶었다. 나는 나도 여행을 좋아하고 많은 곳을 여행했다고 가능하면 너와 함꼐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의 소위 달콤한 제안은 지나 가며 쳐다봤던 달을 넘어 흘러가는 개가 짓는 소리와 같은 느낌의 그 것이었는데, 함께 모로코로 가자. 단 돈 3만불만 가지고 가면 2주 간의 파라다이스가 너의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라는 내 입장에서는 오는 추석때 달나라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찟는 것을 보러 오라는 것 만큼이나 현실감 없는 제안 이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가 더 오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가 않는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극도의 얼어붙은 긴장이 급속히 해동되면서 뇌기능에 문제가 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음날에 내 기억에 거의 남아있는 것이 없다. 

 

우리는 모래 폭풍이 잠잠해 질 때를 기다려 게르에서 나왔다. 그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외국인과 자신의 아지트에서 술마시는 올해의 버킷리스트를 이뤘기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기분이 좋아 연신 유쾌하게 웃어댔다. 내게 모로코에 꼭 가는 거라고, 약속을 한 적도 없는 내게 자신과의 약속은 꼭 지켰으면 한다고 제차 취중 구두 계약을 종용했다. 돌아가는 길의 하늘은 달랐다. 심장을 멎게 할 만큼 가슴을 들었다 놨다하는 별들의 향연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하늘과 별 그리고 달 이 모든 것들이 오는 길 보다 훨씬 맑고 선명했다. 그새 내 눈이 사막에 적응한 걸까? 사하라의 옛주인, 바르바르인들이 내 시력에 감탄하고 돌아갈 지경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 돌아오는 길에 본 밤 하늘을 떠올리며 한 가지 아쉬운 생각이 스치느 것은, 이 하늘 처럼 그의 앞 날을 선명히 알 수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의 비현실적인 제안을 차치하고라도 나와 그가 영원히 모로코에 갈 수 없는 일이 얼마가 지나지 않아 생겨 버렸으니... 아랍의봄 혁명의 불씨가 리비아 전체를 훨훨 불태워 버린 일이었다. 연락이 닿지도 않지만, 내게 호의를 배푼 친구에게 카다피 제국의 몰락 후, 큰 어려움이 그의 삶에 닥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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