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남미의 어느 해변의 브랑코씨

선한 이웃 본문

時, 앎과 느낌의 경계

선한 이웃

Tigre Branco 2024. 6. 5. 13:46

선한 예수께서 왜 내게 선한 이웃이 되라고 하신 것일까?

 

그런데 분명히 선한 이웃이었다. 나의 것을 벗어서 나누어 주는 이웃. 초코파이의 반쪽을 나누는 정이 있는 이웃. 

 

조금 관점을 달리해, 지상 명령인 땅끝까지 내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말씀의 그 복음이 무엇인가 나는 묻고 있다.

 

십자가에서 죽어간 예수의 사랑의 복음을 인간인 나는 다 알고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의 예수를 믿음. 사랑의 행동의 믿음.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 우리의 감각 기관에 국한된 실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존에 대한 실재, 즉 실존. 

 

왜 예수는 선한 이웃이 되라고 하고, 선한 이웃이 되어 자신을 죽인 자들까지 용서하는 삶을 보였던가. 

 

나는 그가 선한 이웃임을 알지는 못해도 믿고 싶고, 이미 믿고 있다. 

 

나의 실존은 그로 인해 존재한다. 

 

 

 

06.05.2024

 

 

 

 

 

That's what friends are for 의 가사에서 And Good Time and Bad Time 이라는 

반응형

'時, 앎과 느낌의 경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구, 나  (0) 2024.06.07
나는  (0) 2024.06.05
이성의 모순  (0) 2024.06.05
내가 브라질에  (0) 2024.06.05
아브라함과 롯, 시골쥐와 서울쥐, 그리고 한국사람  (1) 2024.06.0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