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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앎과 느낌의 경계

아브라함과 롯, 시골쥐와 서울쥐, 그리고 한국사람

Tigre Branco 2024. 6. 2. 12:03

시골쥐 같던 아브라함은 굳이 문명의 이기가 만개한 꽃밭을 동경하지 않았다. 이미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여행하며 깨달음을 얻고, '소돔과 고모라'에 도착한 이유에서 일까, 어쩌면 그는 꽃밭의 꽃들이 언젠가는 시든다는 것, 부귀영화의 반짝이는 실상이 어느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덧없는 허상으로 녹아내린다는 것을 느끼고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그 끝은 더 빛나는 것을 찾고자하는 욕심이 마음과 생활의 올무가 되고 자신의 삶의 만족을 낯춘다는 것을 몸소 체득했으리라. 

 

그는 이 보다 마음의 만족과 평안을 더 좋은 것으로 판단하고 내면으로 부터 들리는 신과의 대화를 사랑하였을 것이며, 어쩌면 결국 어느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그에게 더 큰 의미를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롯에게 좌 혹은 우를 결정할 선택권을 주었던 것이 었으리라. 

 

반대로 그저 평범한 오늘의 대부분의 한국인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를 잘 아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결국 롯과 서울쥐의 마음과 판단과 선택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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