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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어느 해변의 브랑코씨

킬복순 본문

時, 앎과 느낌의 경계

킬복순

Tigre Branco 2024. 5. 30. 12:28

브라질 가입자 넷플릭스에는 볼만한 한국영화가 별로 올라오지 않는다. 죄다 드라마 일색이다. 드라마를 보기에는 적합한 느긋하게 진행되는 서사를 기다리며 즐기는 성격을 가지지 못한 탓에 몰입하여 끝까지 본 드라마가 별로 없다. 그래서 영화를 주로 보는데 넷플릭스에서 한국영화가 혹시 있나 봤다가  매력적인 전도연 배우가 주연인 영화가 올라온 것을 발견하고 바로 그 영화로 빠져들었다.

 

영화의 제목은 길복순. 전도연이 킬러로 나온다는 것을 미리 알아서였는지, 영화제목이 킬복순인지 알다가 다 끝나갈 때 길복순인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길복순이라는 순진한 느낌의 이름이 주인공의 캐릭터를 봐서나 영화의 내용으로 봐서나 타이틀이 된 것이 영화와 잘 어울리지는 안는다는 생각이 들긴했지만, 감독 마음이니까 더 이상 유치하게 영화 제목 가지고 꼬투리를 잡지는 않았다. 어쨌든 순진한 이름의 킬러 길복순이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결투상대들의 아킬레스 건을 왠만한면 끊는 것이었다. 왠지 심장을 찔러 상대를 끝내 버리는 것보다 더 섬뜩하고 현실감이 있어 내 아킬레스건이 쫄깃해 지는 느낌마져 들게 했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은 이 것이었다. 길복순씨는 딸이라는 자신의 사랑을 주는 대상이 있고 자신을 아무리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어도 그 대상에게는 인내하고 사랑을 준다는 것이다. 영화속의 길복순은 분명히 사랑을 모르는 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에 대해서는 다시는 그런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다시는 자신 앞에 서서 자신을 가로 막지 못하도록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비열하고 잔인한 킬러들을 폐기 처분해야 할 인간 쓰레기라고 손가락질할 수있겠지만, 어떠한 면에서는 우리 모두 이런 비열하고 잔인한 면을 우리 뒤에 감추고 살아간다. 우리는 자신을 자상하며 사랑을 아는 사람으로 포장하고 드러내기를 좋아하지만, 내 앞을 가로막는 존재가 나타났을 때는 우리 등뒤 허릿춤에 감춰뒀던 작지만 서슬이 퍼런 칼을 꺼내 상대를 굴복시키려 한다. 그리고 상황이 된다면, 길복순의 주특기처럼 상대의 아킬레스 건을 싹뚝 잘라서 다시는 내 앞에 무릎꿇지 않고는 서있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동물 세계에 던져진 자연의 법칙은 말할 것도 없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법칙도 껍데기를 다 벗기고 보면 실상은 약육강식이 그 가운데에 있다. 그래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는 먹히기 보다는 먹는 위치에 있고자 한다. 왜냐면 적어도 아직은 이 세상에 살아갈 마음과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내 아킬레스건이 튼튼히 붙어있는 이상 그 마음과 의지는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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