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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해변의 K-식당

로우로가 내게 남긴 심장박동기

Tigre Branco 2023. 7. 10. 11:42

로우로를 만나러 갔다. 그의 손은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 그의 한결같이 따듯하던 미소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늘 따듯하던 로우로는 그렇게 차갑게 변해 있었다.

 

로우로를 처음 만난 건, 테니스를 치기 위해 군인체육회관 (Circlo Militar)에 가입하면서였다. 혼자 벽보며 테니스를 치던 나를 몇 일간 지켜만 보던 로우로는 어느 날 벽보며 테니스를 치던 내게 찾아와 자기가 테니스 선생인데 싸게 해줄테니 같이 테니스를 치자고 했다. 일흔은 되어 보이는 이 웃음 많은 할아버지가 테니스를 칠 힘이 있겠나 싶었는데, 한 번 같이 쳐보니 보기 보다 아주 정정하셨다. 힘은 젊은 사람보다 확실히 부족했지만, 정확히 빈 공간을 노리는 노련함이 그에게 있었다. 알고보니 나이가 겉보기 보다는 젊은 환갑을 갓넘긴 나이셨는데, 왠지 삶에 고생이 많았나 싶었다. 

 

그리고 로우로와 함께 1년간 테니스를 쳤다. 사실 젊은 테니스 강사보다 실력이 나을 리 없었지만, 그냥 같이 테니스를 치는 게 좋아서 그리고 싼 맛에 테니스를 같이 쳤다. 가끔은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가난한 집에 태어난 그는 어릴때 상류층의 스포츠인 테니스 장에서 일할 수 있는 우연한 기회가 있었고 부자 아이들 틈에서 눈치밥을 먹으며 테니스장에서 일하며 테니스를 쳤단다. 테니스와 사랑에 빠져서 인지, 그는 늦은 나이에 한 번 결혼했는데 그래서 자녀가 아무도 없었다. 늦게 만난 자신의 아내는 최근 몇 년간 병으로 누워있으며 몇 개월 전에 당뇨로 인해 같은 다리를 두 번 절단했다.(절대 화를 내지 않는 그도 그 때는 얼굴이 붉어졌다. 진작에 좀 더 위 쪽을 잘랐으면 다리를 한 번만 자르면 되었었기 때문이다) 의료의 질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브라질인 모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이 나라여서 로우로의 아내는 아프게 되면서 몇 년간 무료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로우로는 이틀에 한 번 간병인 대신 자신이 병원에 가서 아내를 돌보았다. 그리고 올해 초 언젠가 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는데, 포르탈레자에서 차로 4시간 떨어진 소브라우시에 자기를 찾는 테니스장이 있어서 내년이면 그 도시로 갈 거라고 이야기 했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무려 40년 동안 자기가 몸담은 군인회관의 테니스 장을 떠나 인생의 큰 변화를 계획한 것이다. 왜 로우로는 갑자기 삶의 변화를 생각했던 것일까? 왜 60년 넘게 살아온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동경했었을까? 마치 뭔가 자신에게 올 큰 변화를 감지라도 한 것 처럼. 날씨의 변화, 비가 올 걸 본능적으로 알고 낮게 나는 제비처럼. 

 

아마도 두 달 전이 었을 거다. 그와 마지막으로 테니스를 치고, 늘 그렇듯 내게 이렇게 물었다. "계속 나랑 테니스를 칠거야?" 나는 12번 동안 이나 그랬듯 "그럴 것 같아요" 라고 했다. 그의 물음의 뜻은 미리 같이 테니스를 치는 돈을 좀 달라는 말이다. 나의 대답은 그러겠다는 말이고. 돈을 송금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셔서 한 동안 로우로와 테니스를 치지 못했다. 부모님이 가시고 아침에 로우로와 테니스를 치러 갔다. 그런데 로우로가 보이질 않았다. 일주일 동안 그가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수술을 받는다고 했다. 심장이 나빠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영감님의 건강이 걱정이 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없는 번호라고 했다. 왠지 모르겠는데 또 전화 번호를 바꾼 것이다. 아마 오래 돈을 충전하지 않아 번호가 다시 정지되었을 것이다. 

 

일주일 전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리고 받아보니 낯익은 목소리다. 늘 그렇듯 유쾌하고 따듯하지만 조금은 쉰 목소리를 가진 그 사람이 내게 안부를 전해왔다. 심장 수술은 잘 끝났고, 심장박동기를 삽입해 한 달간 테니스 장에 가지 못할 것이라 했다. 아무래도 의사말을 따라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몸도 않 좋던 그가  왜 새로운 핸드폰 칩을 사서 그 날 내게 전화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걱정한다는 걸 알았던 것일까? 그게 아니면 자신의 40년간 삶이 오롯히 담긴 테니스 코트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기 전에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아마 본인도 모르고 나도 모를 일일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생각의 결과이며 그 생각은 무의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우로의 무의식은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도록 그에게 권했다. 

 

그저께 아침에 로우로가 없는 테니스장에 벽치기를 하러 갔다. 역시 로우로는 없었는데, 40대의 테니스 강사 한 명과 테니스 장을 관리하는 맹구를 닮은 바보과의 젊은 친구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로우로가 사망한 소식을 전했다. 그 날 오후에 군인회관에 확인해보니, 오후 늦게 중산층이 묻히는 묘지에 그의 장례식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40년간 한결같이 일 한 그에게 회관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만난 로우로의 손은 차가웠고, 얼굴은 굳어있었다. 내가 알던 그의 친절한 미소는 더 이상 관에 누워있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슬프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그의 성품과 따듯한 미소가 내 심장에 여전히 흐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의 기억속에 남은 그의 푸르른 미소는 그가 생의 마지막 시간에 가지게 된 심장박동기처럼 내가 그를 기억할 때마다 내 심장을 분홍빛으로 뛰게할 그가 남긴 선물이었다는 것을...

 

차우, 메우 아미고 로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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