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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어느 해변의 브랑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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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해변의 K-식당

긴머리 총각

Tigre Branco 2022. 8. 3. 13:05

붐비지는 않은 저녁이 었다. 들어오며 한국말을 하느냐고 묻는다. 햇빛에 꽤 오랜 시간을 그을렸을 법한 구리색의 피부와 그의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염색된 긴머리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내 머리 속에 인공지능이 있다면 이 사람이 한국인 배낭객일 가능성을 90퍼센트 이상으로 높게 봤을 터이다. 배낭 여행객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더군다나 한국인 관광객 조차 만나 본적이 까마득한데, 반가운 마음이 우선 들었다. 이 긴머리 총각과 이야기를 몇마디 나누다 보니, 8개월째 남미를 여행중인 친구였고, 20대 후반으로 봤는데 20대 초반이었다. 아마 자연이 구릿빛으로 선탠시킨 까닭으로 좀 더 들어 보이는 거 겠지. 본인 이야기를 쉽게 꺼냈는데, 축구선수를 하다 다리의 큰 부상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해외에서 살고 있으며 여행도 오랜 기간하고 있다고 했다. 전직 운동선수였다는 것이 선입견으로 작용했는지, 쉽게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는 사실 때문인지 솔직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마침 다른 테이블에 뉴욕에서 댄스경연차 온 베트남계 여자 미국인이 있었는데,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걸 계속 보는 것 같더니,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긴머리 총각의 옆에 가서 이야기를 걸고 있었다. 헤어스타일이 끝내준다는 말로 그의 환심을 사고, 대화를 텃다. 결국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두 사람은 가게를 나가 대서양의 달빛이 머무는 해변쪽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갔다.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짐작컨데 20대 초반에 어떤 사고로 그가 그리던 삶이 완전히 찢겨져 나가는 고통과 변화를 겪은 후, 삶의 새로운 길을 찾고자 걷고 생각하고 또 걷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8개월 동안 멕시코에서 중미를 거쳐 주로 육로를 통해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에 아마 그런 내적인 필요가 동기가 되었으리라. 그리고 그 동기가 그를 햋빛에 단련시켜 그의 피부를 강하고 탄력있는 구리빛으로 만들고, 내면의 생각의 길이가 깊어진 만큼 길어진 긴머리를 흔들며 질주하는 야생마의 본능을 깨웠으리라.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 그와 그의 긴머리에 맘을 빼앗겨 내일 뉴욕으로 돌아가는 일정에 있던 여자 댄서의 순정이 짧은 찰나의 시간에 핫핑크로 물들어가던 오늘 저녁의 장면을 다시 생각해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그녀의 행동이 조금 더 이해가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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