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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어느 해변의 브랑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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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해변의 K-식당

여행의 목적

Tigre Branco 2022. 6. 11. 21:04

마테우스가 아마 처음으로 예약을 하고 식당에 왔다. 특별한 손님이 있는 지, 누구랑 같이 오는 지,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 지 궁금했다. 그리고 예약 날짜인 어제 저녁 시간에 말끔하고 잘 정돈된 헤어스타일의 키가 큰 남자와 두 분의 할머니가 가게로 걸어들어 오셨다. 마테우스라는 이름으로 예약을 했다고 해서 예약석으로 앉게 도와드렸다. 곧 이어 마테우스와 로라이니가 도착했고, 좋아하는 음식들을 내게 주문했다. 

 

마테우스를 안지는 꽤 오래되었다. 손님으로 자주 만났고 곧 편한 사이가 되었다. 난 둘의 결혼식 피로연에도 갔고, 우리 집에 초대해서 좋은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우리 부모님께서 한국에서 다녀가실 때, 로라이니의 부모님이 초대해서 그 별장에 가기도 했다. 마테우스와 로라이니는 이 지역에서는 드물게 아시아 여행을 좋아하고 여러 번 아시아를 다녀왔다. 일본과 중국은 가봤는데 아직 한국을 가본적이 없어서 언젠가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말끔한 헤어 스타일과 큰 키가 인상적인 마테우스의 친구는 가까이서 보니 하늘하늘한 셔츠와 은빛으로 휘감은 하얀 스니커즈도 때깔이 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 패셔니스타구나 싶었다. 해변가이다 보니 대충 입고 하바이아나스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데, 그래도 이 곳의 멋쟁이들은 다른 대도시의 멋쟁이들과 다르지 않다. 아무튼 서스럼없이 다른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듯이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코리아를 가보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한국에 갔었나 했더니, 약간은 자랑스럽게 한국이 아니라 북한 이라고 했다. 나는 북한에 가고 싶어도 남북한이 휴전중이라 갈 수가 없다고 하니 그 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갔던 뉴욕의 한국식당 이야기 등등 해외 경험을 일행들 그리고 나와 나누었다. 

 

그 친구는 우리 가게 한 쪽 벽면에 크게 붙은 세계지도를 유심히 보며, 내게 이야기했다. 자신이 가본 나라가 84개국인데, 산마리노, 안도라 등 곧 있을 여행으로 88개국이 될 거라고 말이다. 큰 자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특히 이 지역 사람으로서는 특별한 것이 사실이다. 아시아에 가본 사람도 별로 없는데, 북한도 다녀오고 84개국을 다녀오려면 유럽은 당연하고, 관광으로 유명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을 다녀봤어야 했을테니까 말이다. 그 친구의 이름은 파블로였는데, 콜롬비아의 마약왕과 이름이 같아서 마테우스가 놀리며 말하길, 마약 밀수 때문에 세계 곳곳에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농담을 했다. 

 

마테우스와 그 친구들이 금요일 저녁에 한식을 맛있게 먹고 돌아간 뒤, 파블로와의 이야기가 머리에 잔상으로 남았다. 그리고 여행의 목적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 머리에 떠올라서 사라지지 않았다. 내게 질문을 던져 본다. 만 20세가 되기 전에 미국으로 여행을 떠난 나는 42살이 되는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여행하고 일하면서 살았다. 그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왜 여행을 하려고 했고, 왜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했던가? 

 

내게는 여행이 그 무엇보다 값진 투자였다. 나는 여행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의 현장과 그들의 삶을 보고 내 삶이라는 나의 영원한 화두에 대한 깨달음과 도움을 얻고자 했다. 일상에 내 삶이 함몰되지 않고, 나일강처럼 장구하기도 하고 눈의 깜빡임과 같이 찰나와도 같은 인류의 이 땅에서의 시간 그리고 그에 포함되어 인간이라는 육신을 입고 지내고 있는 지금.이 땅 곳곳에 문명이라는 다양한 집합적인 삶의 괘적을 보고 느끼고 산다는 것은 내 삶에 던지는 소중하고 비할 바없이 가치 있는 자산이다. 

 

감각에만 의지해 물질화 되어 버린 요즘 세상의 여행은 자신의 성찰과 삶에 대한 깨달음 보다는 물질 문명에 대한 찬양과 과시와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들로만 오롯히 도배 되어 버린 것 같은 씁쓸함이 있다. 철학자, 칸트는 그가 태어났으며 당시의 프로이센에서 현재의 러시아로 국가가 바뀐 쾨니히스부르크 시를 단 한번도 떠난 적이 없다고 알려진다. 아마 그의 판단에 있어서 자신과 이 세계를 인식하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여행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에게 있어서 여행은 자신이 평생을 바쳐 찾고자한 인간 세상에 대한 인간의 사고 및 행위에 대한 진리를 얻는데, 방해가 되는 것으로 보았을 지도 모른다. 

 

나와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여행을 보는 관점이 어떤 면에서는 같으며 어떤 면에서는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하는 것이 자신과 세상을 성찰하는 데에 도움이 되느냐, 방해가 되느냐하는 것에서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물질문명에 대한 찬양과 과시 그리고 감각의 만족을 위한 여행에는 반대적인 입장을 가졌다는 부분에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칸트가 살던 곳을 떠나는 것 자체를 극도로 싫어 했다던지, 신체적인 어려움이라던지 여러 다른 이유로 여행을 기피했을 수도 있겠지만, 위대한 철학가가 평생을 한 지역에서 살았다는 특이한 이유를 여행에 대한 그의 관점이라는 것으로 좁혀 나름대로 추측해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답답하고 진지하게 여행을 생각하냐, 여행은 멋있고 재미있는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새로운 사람들 만나서 신나게 놀다 오는 것이 다가 아니냐 라고 내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물론 나의 여행 중에 이런 것들이 늘 포함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더 중요하고 더 가치있고 더 기쁨을 주는 것은 짧은 감각의 쾌락이 아니라, 내 평생을 삶을 관통하는 주제에 대한 진지한 생각과 배움과 깨닮음이라는 것이 나의 여행의 목적에 대한 바뀔 수 없는 우선순위이다. 어쩌면 파블로처럼 여행을 자주하든, 아니면 칸트처럼 전혀 하지 않든 그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나의 인생이라는 여정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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