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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해변의 K-식당

날 미행한 자의 정체

Tigre Branco 2022. 2. 8. 03:55

음산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비가 내리는 날도 아니었고, 달도 가로등도 여느 때 같던 그 날에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그런데 그가 나타났다. 그는 그냥 닫힌 가게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다짜고짜 종이와 볼펜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내게 원하는 것을 적어 내려갔다. 

 

'화장실을 좀 쓰고 싶습니다. 난 농아인입니다'. 

 

왠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농아인이고 해서 친절함을 조금 더 해 그러시라고 길을 안내 했다. 화장실을 오래 쓰는 걸 보니 넘버 2 인가 보다. 한참 뒤 그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뜬금없이 수업는 질문 공세를 퍼붙기 시작했다. 가게에 대해 나에 대해. 그에에 억누르지 못할 궁금증의 샘이 터져 폭포수 같이 쏟아졌다.

 

겨우 그를 웃음으로 몰아낸 뒤애 가게를 마무리 하는데, 뭔가 서늘한 기분이 들어 밖을 보니 그 녀석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 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피하려고 하지만, 바깥의 사각지대에서 숨어서 가게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건 아니구나 싶어 빨리 가게를 정리하고 나갔다. 그녀석이 뭔가를 또 물어 보려고 했다. 가게가 몇 년 되었냐는 질문이었다 그냥 질문을 이어 가려고 하는구나. 퍼레이드가 열렸구나 하고 냅다 버릴 쓰레기를 들고 그냥 떠났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녀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왠지 나를 따라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집 반대 방향인 빵지아수까 슈퍼마켓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집에 전화를 했다. 우리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던 아내가 그 사람이 나를 뒤 쫒고 있다고 했다. 난 재빨리 빵지아수까로 숨어 들었다. 그리고 그 녀석이 이 안으로 들어왔는 지를 몰라 두리번 거리다 결국 아내의 생각대로 아내의 차를 타고 이 곳을 빠져 나가기로 했다. 

 

아내가 이윽코 슈퍼의 지하주차장으로 왔고, 난 차를 타고 이 곳을 탈출했다. 그런데 아내 왈, 그 녀석을 봤다는 것이다. 슈퍼의 정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는 것이다. 잰장 난 섬뜩한 기운이 등허리를 타고 내렸다. 대화를 나누며 유도와 주지수, 복싱을 하느냐고 물어보던 것이 기억이 났다. 확실히 위험한 상황인가 싶었다. 그 동안 7년 동안 어떤 시비없이 무사하게 날 지켜주신 모든 분과 위에 계신 분께 감사드리며 하루를 마쳤다. 

 

그리고 오늘,

 

그 인간이 낮에 나타났다. 내가 아는 늙은 변호사 양반과 또 한 양복을 입은 노신사와 함께. 그 노신사는 신기하게도 그 녀석과 수화로 대화를 했다. 난 놀란 마음을 억누르고 물어보았다. 혹시.. 가족?? 그 분은 웃으며, 그래요 내 아들이요 라고 했다. 알고보니 노신사는 그 녀석의 아버지고, 좋은 인상과 풍채를 가진 왠지 사람 좋아 보이는 변호사였다. 

 

그리고 그 날 밤 날 미행한 자는 그저 순진하고, 평범해보이는 그저 아버지의 말을 잘 듣고, 나한테 했듯이 아버지를 귀찮토록 말을 시키는 한 농아인 아들이었던 것이다. 저리 쉬지도 않고 손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을 법한데 아버지가 시종일관 아들에게 눈을 때지 않고, 한 마디 한 마디 수화로 대답해주는 모습이 그저 보기 좋고 흐뭇했다.

 

이 것이 어제 밤 날 끈질기게 미행한 자의 정체이자 또 하나 알게된 그의 소중한 아버지의 정체 였다.

 

 

27. 0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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