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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어느 해변의 브랑코씨
겔럭시 S8에 대한 그리고 김정은에 대한 믿음. 본문
한 콜롬비아 인이 찾아왔다. 스마트폰을 내게 내밀며 돈이 꼭 필요해 내가 좀 사주었으면 했다. 자세히 보니 겔럭시S8 이라는 제품명이 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이 전에도 스마트폰을 팔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정도의 좋은 물건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한 달 밖에 사용하지 않았는지 잔 기스도 없다. 내 마음이 조금씩 사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내의 스마트폰이 오래 되어서 가끔 잘 되지 않는 때도 있고 해서, 이 걸로 바꾸어 주면 딱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 이제 금액만 맞으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800헤알이라는 좋은 가격을 내게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내일 귀국하는 차라 급전이 필요하다며 사달라고 했다. 나는 사기로 했다.
아내에게 확인을 해야 할 일이라 가게로 빨리 오라고 했다. 나는 이 콜롬비아 인의 외판원이 되어 그의 제품을 보여 주고 집사람을 설득시키려 했다. 원가격은 모르겠지만 800헤알이 작은 돈이 아닌데 믿을 수 있는 건가라고 내게 물었고, 콜럼비아 인과 함께 스마트폰의 기본 기능들을 테스트 해 보여 줬다. 전화, 인터넷 사용, 외관 등등에서 별 이상은 찾지 못했다. 단지 핸드폰이 좀 무거운 게 이상했는데, 겔럭시S8을 들어본 적이 없고, 아내가 이 정도 무게는 들고 다니기에 문제 없다고 하야 넘어 갔다. 우리는 지금은 현금이 없으니 3시간 뒤에 찾아 오라고 했다. 콜롬비이 인은 혹시 팔기로 한 사람에게 팔지 못하면 돌아 오겠다고 했다.
집사람은 아무래도 불안한 느낌이 있다고 했고, 나는 이미 맘의 결정을 한 상태라 별일 있겠냐고 했다. 유일한 한 가지 꺼림직한 것은 혹시 이 사람이 우리에게 판 뒤에 다시 훔치려 강도질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었는데, 이 사람 태도로 봐서 그런 가능성은 아주 낮아 보였다. 나는 집에 손 볼 것이 있어 잠시 갔다고 현금 800헤알을 꺼내 팬티 안에 넣었다. 헐거운 내 바지 주머니에게 돈을 흘리지 않고 무사히 가게로 도착했다. 시간이 지났는데 이 사람이 오지를 안았다. 나는 아... 우리 물건이 아니었구나. 아내도 조금은 아쉬워했지만, 찝찝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고 했다. 그러던 찰나에 콜롬비아 인이 나타났다. 내게 팔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인터넷으로 찾은 사진과 제품의 외관을 한 번 확인하고 돈을 건냈다. 집사람도 필요한 물건을 거의 새 것과 다름없는 상태에 1/3도 안되는 값으로 구매한 것에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내게로 부터 선물받은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으므로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생겼다. 구글 계정 동기화 하고, 카톡 같은 필수 어플들을 깔고 있는데, 뭔가 부드럽게 되지를 않았다. 그리고 64기가의 저장공간 중에 1기가 정도 사용했는데, 저장공간 부족이라는 메시지가 계속 떴다. 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인터넷을 해매였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나는 스마트폰 샵에 가기로 했다. 가게는 아내에게 맡겨두고 잠시후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줄 스마트 폰 샵으로 갔다. 스마트폰 전문가가 이리저리 기기를 보더니, 어디서 샀냐고 물어본다. 한 외국인에게 샀다고 하니, 죄송하지만 짝퉁을 사셨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진품과의 차이를 설명해 주는데, 성능은 물론이고 외관의 차이점도 샅샅이 알려주었다. 나는 아찔했다. 집사람의 눈총을 받을 걱정도 걱정이지만 어리석게 콜롬비아인에게 농락당한 것에 얼굴이 붉어졌다.
가게로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하였다. 내가 왜 사기를 당했을까? 무게가 무겁다는 의심도 했고, 가격이 너무 괜찮다는 것도 이상하게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인터넷으로 조금 더 확인해 보았으면 디테일의 차이를 알 수도 있었을텐데... 왜 그런 과정과 과정에 의심을 하기 보다는 그 의심을 그냥 넘기려고 만 했을까? 그 사람을 믿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말이다. 그 것은 내 눈앞에 있는 열매가 너무 달콤해 보였고, 그 열매에 나의 오감과 이성이 마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내게는 그 스마트폰에 대한 강한 믿음이 생겨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날 많은 한국 사람에게 강한 믿음을 심어주는 역사적인 사건이 판문점에서 일어났다.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 및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생방송으로 중계된 담화문을 낭독하는 김정은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불렀고, 한반도에 평화를 꼭 이루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 걸 보며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유연해보이며 평화를 추구하는 김정은은 태도에 불편했던 그에 대한 시선이 바뀌고 있는 것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인터넷 상에 가장 많은 욕을 듣던 사람들 중 하나인 김정은이 독재자, 인권탄압자, 패륜아, 성범죄자, 돼지새끼, 죽일놈이 본인의 이름의 수식어 이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이루어낼 주역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순간이 었다.
물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념비적인 사건인 것은 분명하나 우리는 핵무기 그리고 한반도 전쟁의 위협이라는 혹독한 겨울을 지나 우리 앞에 불현듯 나타난 달콤한 평화의 열매가 과연 어디서 나타난 것인 지를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오감으로 부족하면 육감까지 동원하고 상황을 잘 살펴서 이성적으로 북한의 그리고 김정은의 행동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70년 간 적대적인 상황에서 벗어 나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겠으나, 왜 북한이 갑자기 70년 간의 적대적인 태도를 청산하려고 하는 지, 진의는 있는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는 꼭 이루어야 할 숙제임에 틀림없지만, 이미 그 평화가 왔음을 혹은 그 평화가 곧올 것임을 비판없이 믿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 콜롬비아인이 쳐 놓은 것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올가미에 걸리게 될 지도 모른다.
징검다리의 돌을 두드리며 건너는 마음으로 이루어 내야 할 것이다. 따사로운 오후에 그림같이 펼쳐진 풍경의 따사로움을 믿고 낭만적인 징검다리를 믿고 겁없이 징검다리를 뛰어 가다가는 그 아래 설치된 지뢰에 최소한 다리나 심하면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28.0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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