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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앎과 느낌의 경계

안다는 것

Tigre Branco 2024. 5. 7. 19:58

내가 안다는 것은 진실이 곡해 되었을 가능성이 큰,여러 사회에서 구축한 사고체계의 틀이 내게 제공한 지식으로 부터 기인한다.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비슷하지만 그 지향점에서 큰 차이가 나는 그들 각자가 생각한 바른 지식 혹은 철학. 같은 야훼를 믿는다고하지만, 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살아 가던 그 들에게 같았을까?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학을 본다면 쉽게 알 수 있듯이 특히 예수에 대한 전혀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헤겔은 역사철학을 통해 인류의 지성이 늘 새로운 것에 의해 새롭게 정의되며 진보한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모든 철학은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것에 의해 부정되거나 변화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 그 개개의 고유성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치 토마스쿤이 패러다임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 관점의 차이 혹은 패러다임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것이 그 당시의 지식 혹은 그 시대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인류가 만든 지식과 그 지식 체계라는 것이 진리라고 보기에는 물의가 따른다. 지구라는 곳에 태어나 유한한 감각기관과 유한한 지능을 가지고 인식하고 판단하고 체계한 것이 지식인 것인데, 마치 소경들이 한 코끼리의 다른 부분을 만져보고 코끼리에 대한 전혀 다른 묘사를 각자가 하였던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는 그 지식이 큰 유용성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지식을 기반으로 해서 법칙으로 정해서 구성되어 있는 곳이 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하여 그 것이 참이라는 의미의 지식 혹은 다른 이름으로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의문투성이인 이 땅에 태어났다. 그리고 한 존재로 나를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진실이라는 생각과 사고의 틀에 나는 노출 되어 있다. 나는 어떤 날 이 수도 없이 많은 진실이라는 생각들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그만 두기로 했다. 대신 더 분명한 것에 나를 놓기로 했다. 그 것은 안다는 것 대신에 오늘을 느낀다는 것. 

 

 

07.0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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