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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어느 해변의 브랑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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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앎과 느낌의 경계

카모마일 티

Tigre Branco 2022. 2. 23. 11:08

비가 끊임없다. 기침도 몇 주간 그치지를 않는다. 해변을 걸어 돌아오는 길에 써브웨이에 들린다. 피곤하고 텅빈 내 위를 달래줄 베지테리안 샌드위치를 포장해 가지고 나왔다. 아파트로 걸어 들어가는 길에 하늘을 한 번 쳐다 보았다. 먹구름이 검디 검었다. 내 맘에도 먹구름이 끼는 것 같다. 침울함이 수많은 작은 벌레가 되어 스물스물 내 피부로 기어다니는 느낌이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고요하다. 마누라와 아들은 조용히 제 침대에 누웠다. 업어져 자는 아들의 모습이 영판없는 제 할머니다. 늘 엎어지고 일어나고 평생을 그리 살았던 내 아들의 할머니, 그 꼴이 내 아들을 통해 환영이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내 인생에 먹구름을 드리운 그가 떠오르자, 갑자기 폐부를 찌르는 통증이 감전된 듯 내 머리와 발 끝까지 흐른다. 잠시 테이블에 앉아 고개를 돌렸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카모마일로 내 시선이 멈춘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티백에 곰팡이가 덕지덕지 붙었다. 우연인지 내 아이의 할머니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먹었던 욕창과 비슷한 색이다. 청록색의 욕창은 묘하게 내 시선을 사로 잡았다.  청녹색의 곰팡이가 내 시선을 사로 잡은 것처럼. 고교시절 경주의 한 박물관서에 보았던 빛나던 유물의 발 밑 한 편에 기생하던 그 수치스런 색깔이다.

 

왠지 이 더러움을 씻고 태워 버리고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전자를 들어 가스랜지에 올리고 물이 끓기만을 기다린다. 이 동그란 주전자는 동그란 지구인 것인가. 이 지구는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삼켜서 사라지게 하듯 이 주전자 속으로 그 더러움을 오늘 기어이 씻고 말것같다.

 

더덕더덕 붙어버린 카모마일 티백 뭉치 전부를 주전자 속으로 집어 넣었다. 청녹색의 수치스러운 부분도 함께 그 속에 빠져 들었다. 아주 잠시 색깔이 푸르게 짙어지다. 옅은 갈색의 차 색깔로 변해졌다.

 

카모마일 티를 마시며 결국 내 어미의 청록색을 담은 카모밀 티를 마시게 된다.

 

 

20.0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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