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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어느 해변의 브랑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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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해변의 K-식당

습관처럼 긴 기다림

Tigre Branco 2022. 2. 3. 04:56

그들에게 난 무엇이 되엇는가? 날 걱정하는 그들의 전화 목소리가 내 귓가를 너머 머리에 맴돈다. 코로나 바이러스다. 이 곳이 위험하다고 뉴스에 나왔던 것이다. 날 걱정하는 그들의 소리가 왠지 내 가슴에 맺혔고 사라지지 않고, 오래된 창을 만들어 그들을 들여다보게 하였다.

 

내가 집을 떠나서 그들을 떠나서 살게된 것은 대학을 가고 부터다. 대학이란 큰 학문이라는 뜻일 텐데 그런 것을 배운 기억은 없고 오히려 대학에 오기 전 그들과 같이 살던 때, 집에서나 교회에서의 이런 저런 가르침들이 어떤 것은 남고 어떤 것은 날아갔으며, 어떤 것들은 내 무의식아래로 스며들어 그 생존을 도모했다. 어쨌든 그 대학부터 시작된 나의 출가는 나이 40이 넘는 지금이 되도록 20년을 돌고 돌고 자전하고 공전하는 지구에게서 여러 삶의 표본을 취했다. 

 

이제 어른이 될 만큼 나이가 들은 것인가?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어른이 가지게 되는 메리트인가? 그들이 남긴 소리의 파장이 신비하게 만들어낸 그 창으로 머리가 하얏게 센, 얼굴에는 저승꽃이 피고 주름이 깊어져버린 그 두 사람이 또렷히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긴 기다림도 함께.

 

대학을 가서 한 달에 한 두번 날 기대던 그들을 만났었다. 여전히 젊고 밝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던 때였다. 아직 철없는 아이었던 내게 밤이되면 그 보호를 받기 위해 돌아가야만 하던 곳, 그들이었다. 

 

군대를 가게 되었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성인이 되도록 도움을 준 이 국가와 나는 보호하고 키워준 두 사람을 위해서 군대에 왔다고 생각을 했다. 보호를 받기만하다가 이제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가지게 된 것이 자랑스러웠다. 첫 휴가를 갔을 때, 날 기다리던 그들의 눈물을 보았다. 따스한 포옹의 느낌에 머리가 아찔하고, 가슴이 떨려왔다. 건강한 나를 보며 그저 눈을 감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기도하던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늘에 감사했다. 

 

제대하고 미국에서 나의 첫 해외 생활이 시작되었다. 모든게 새로웠던 그 때, 첫 느낌. 나의 새로운 터전은 이모부 가족이 있던 뉴욕의 퀸즈. 한 가지의 색으로 그려진 모든 게 명확한 한국과는 다르게 세상의 수만가지의 색깔이 혼합된 그 세상에서 나는 나를 통해 세상을 보려는 첫 시도를 하였다. 생전 처음보는 히스페닉들과 함께 일하며,그들의 굴곡과 리듬있는 오늘의 삶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다. 주말이면 난 나의 기억을 더듬어 내가 왔던 곳으로 접속을 시도했다. 일요일이면 교회가는 나처럼, 나의 신앙의 대상인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늘 전화카드를 사서 공중전화로 연락을 했다. 그들과 내가 있던 세상과 혼란스런 신세계의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체 전화카드와 공중전화. 난 매트릭스에 있었던 것이었다.  

 

중국에서 꿈꾸던 세계일주프로그램의 인솔자가 되었고, 그들은 나를 위해 하루도 멈추지 않는 기도를 시작했다. 나의 꿈과 같은 여행이 끝나는 그 날까지. 

 

직장을 구해 알라에 엎드린 무슬림의 땅으로 가게 된 나는 부모님께 큰 절하고, 불볕이 머무는 사하라의 오지로 떠났다. 3년을 지내다보니 그 곳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좋아하는 여자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휴가를 떠나온 중에 내전이 터졌다. 우리는 한국으로 나와야 했다. 

 

결혼하고 부모님 댁에 살면서 그들의 곁에 머무르게 되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 한국에 머무르기가 싫었던 나는 세계일주를 하며 좋아하게된 남미로 떠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작은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난 포르탈레자에 식당을 열게 되었고, 한국음식을 잘 몰랐던 나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엄마는 서스럼없이 와서 우리를 도와 주었다. 

 

그리고 한국과는 의도치는 않게 멀어져 버렸다. 내가 있는 곳이 좋기도 하지만, 한국에  다녀갈 상황이 안되었던 것이다. 이제 사진으로만 만나는 부모님은 점점 그 모습이 변해갔다. 8년을 이곳에 있으면서 그들의 잦은 병원방문 소식을 접해야 했고, 많아지는 주름과 흰머리는 그들의 푸르른 젊음의 색이 완전히 바래바렸음을 말해 주었다. 

 

아직도 어떻게 나에 대한 그리움이 이토록 남았을까? 그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신의 몸에서 나온 존재에대한 끝없는 관심과 애정의 발로인가? 그 것을 결국 자기애의 일종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오래 전에 만난 한 작고 순결한 존재에 대한 사라지지 않는 감격과 변하지 않는 사랑일까? 

 

나에게는 고마움이다. 내가 고마움을 표시할 그 이상의 존재는 없다. 내가 받은 것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며, 뭘 해도 내가 받은 절대적인 양을 돌려주고 갚아낼 방법은 없다. 아직도 우리의 처음 만남 이후로 습관처럼 나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나지막히 혼자 읖조려 본다.

 

고마워요. 

 

 

25.0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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